관심/교육

자기주도 학습이 아니라 ‘엄마주도 학습’

kurumii 2012. 10. 11. 07:13




“다른 집 애들처럼 스스로 알아서 해주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나하나 챙겨주고 제대로 했는지 확인하고, 정말 힘이 드네요. 자기주도 학습이 중요하다고 해서 캠프도 보내보고 그런 학원에도 다니지만 달라지는 게 거의 없어요. 하는 척 시늉만 하고 살살 눈치나 보고, 심지어 속이기까지 하니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네요. 빠듯한 살림에 학원 보내느라 적자지만 그래도 아이의 미래를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가끔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고 원망스럽기까지 합니다. 부모 노릇 제대로 해보려고 직장도 그만 두고 물심양면으로 노력했지만 결과는 정반대네요.”

한 학부모가 보낸 메일 내용을 그대로 옮겼다. 나름 최선을 다해 아이 교육을, 부모 노릇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부모들이 자주 곤경에 빠진다. 사춘기라고 생각하기에는 아이의 저항이 너무 심해지는 것도 문제다. 점점 사이가 틀어지는가 싶더니 대화는커녕 서로 얼굴 마주하는 것조차 회피하는 사이가 된다. 여기저기, 이것저것 해결책을 찾아 헤매지만 점점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만 분명해진다.

■ 부모의 욕심과 아이의 공부 동기 남들처럼 마음껏 사교육을 시키지 못해서 불안해하는 부모들에게 진지하게 조언했다. 아이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는 것만 시켜도 충분하고 부모가 불안감을 달래기 위해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시키면 결국 심각한 부작용과 후유증을 피할 수 없게 된다는 경고도 했다. 하지만 쇠귀에 경 읽기!

더는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상황에 처하고 나서, 경고했던 일들이 실제 벌어지고 나니 갑자기 생각이 나더라고 하면서 부모들이 다시 찾아온다. 그런데 그런 부모들은 자신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부모로서 할 도리는 다했고 문제는 아이에게 있다는 확인을 받고 싶어 한다. 워낙 간절하기에 받아주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수 없다. 진실이 아닐 뿐 아니라 부모가 아이를 패륜아나 정신병자 취급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결국 도움을 주기 위해 아이를 따로 만나 확인한 사실을 설명한다.

“우리 엄마는 아주 어릴 때부터 제가 하고 싶어 하는 일보다는 엄마가 선택한 일을 하도록 강요했어요. 처음에는 저도 엄마가 고마워서 열심히 했는데 점점 하기 싫어지니 어쩔 수 없잖아요.” 아이가 원래 공부를 게을리한 게 아니라 그렇게 길들여진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하면 엄마는 강하게 반발한다. “그렇다면 아이가 원하는 것을 다 하도록 내버려둬야 하는데 철부지들이 하고 싶은 것 다 하면 공부는 언제 하느냐…”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시간 낭비이고 엄마가 시킨 공부를 열심히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부모의 고정관념이 확인되는 순간이다.

부모와 아이의 생각 차이를 좁혀보려고 하지만 정말 쉽지 않다. 아이는 엄마가 강제로 시켜서 그렇다 말하고, 엄마는 아이가 딴짓을 하니까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한다. 부모의 마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부모의 욕심이 워낙 강해 아이의 공부 동기를 집어삼킨, 당연한 결과라고. 물론 쉽게 동의를 얻지는 못한다.

아이 주도가 아니라 엄마 주도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에 고개는 끄덕이지만 마음 한편에 일어나는 반발이 느껴진다.

■ ‘부모우월주의’라는 가치관이 문제 ‘자기주도’가 대유행이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자기주도적인 학습자는 현저히 줄고 타인주도에 익숙한 학습자가 급증하고 있다. 모든 부모들이 자녀가 자기주도적인 학습자가 되기를 간절히 희망하지만 오히려 점점 타율적으로 변해가는 아이를 보면서 당황하고 절망한다.

하지만 자율과 타율이라는 현재 상반된 아이들의 모습을 추적해 보면 부모의 가치관과 태도를 만나게 된다. 아이에게 자기주도의 기회를 주지 않고 엄마 주도를 강요함으로써 아이는 결국 자율을 잃고 타율적으로 변질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부모가 주도하는 환경에서 아이는 자신의 주도권을 인정받지도, 지킬 수도 없었던 것이다.

부모 주도가 아이 주도와 본질적으로 모순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부모들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는 동양의 서열문화가 부모는 우월하고 아이는 열등하다는 생각을 뼛속 깊이 각인시킨 탓으로 분석된다. 부모우월주의라는 가치관이 주범인 셈이다.

가치관이라는 말은 사실 모호한 측면이 있지만 아이들의 일상에서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공부를 게을리하는 아이를 대하는 부모들의 반응을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열심히 하는 아이들과 비교하면서 야단친다. 공부를 게을리하게 된 원인을 생각하는 부모는 드물다.

어느 순간 아이가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도 부모는 의심한다. 부모들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주장하지만 아이를 믿지 못하는 부모의 태도, 가치관과 연결시켜야 설명이 가능하다.

아이의 성적이 떨어졌을 때에 나타나는 부모들의 반응도 정말 다르다. 성적을 올리기 위한 노력과 투자를 강조하면서 쉽게 화를 내는 부모들이 대부분이다. 아이가 좌절할 수도 있기에 위로하고 격려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드물다. 아이가 성적을 회복해도 여전히 불안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아이의 감정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앞세우는 부모의 일방적인 태도와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학원에 가기 싫다는 아이의 말도 달리 해석한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공부하기 싫으니까 핑계를 댄다고 생각하지만 학원 교육이 아이에게 잘 맞지 않아 힘들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는 드물다. 아이의 생각을 존중하는 부모와 무시하는 부모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 부모의 가치관은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성장환경 나라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마음이 아무리 강해도 국민의 의견을 무시하면 자칫 독재로 흘러 오히려 국민을 도탄에 빠뜨리기 십상이다. 부모 역할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하고 자식의 성공을 위해 헌신하더라도 자녀의 인격을 존중하는 마음이 결여되면 자녀의 인생을 망치게 된다.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패배의식에 빠지지 않고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아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부모가 성적만을 앞세우는 맹목적인 경쟁논리에 매몰되지 않은 가치관을 갖춰야 아이들이 좌절하지 않고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다. 또 사교육 만능주의에 오염되지 않은 건강한 가치관이 있어야 아이들이 자기주도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누누이 강조하건대 부모력의 핵심은 경제력과 정보력이 결코 아니다. 경제력과 정보력으로 무장한 대한민국 학부모들이, 자식을 위한다는 미명 아래 아무런 거리낌 없이 휘두르는 정서 폭력에 아이들이 쓰러져가고 있다. 여전히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어요”라는 생각에 빠져 있는 학부모들에게 분명히 답한다. 부모로서, 당신의 의도에는 문제가 없지만 바로 당신의 가치관 때문에 아이들이 망가졌다고. 경제력과 정보력이 중요하다는 시대적인 착각, 그에 편승한 당신의 일방적인 태도와 가치관이 결국 아이를 망치고 말았다고! 불확실성이 점점 커지는 시대. 부모 역할이 진정 고민이라면 아이를 대하는 자신의 태도와 가치관을 점검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길이다.

비상교육 공부연구소 소장·<박재원의 부모효과> 저자

-출처: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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